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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
제주 기독교순례길 '은혜의 첫길' 개장
  • Nov 10, 2017

 

제주 기독교순례길 '은혜의 첫길’ 개장

14일 오전 10시 제주성내교회 출발---산지천, 동문시장,사라봉
제주시 원도심 따라 제주 최초 기독교 선교 스토리
항일운동과 사회교육사업 펼친 역사 기록을 느낀다


제주시 원도심을 걸으며 제주기독교 역사 현장을 느낄 수 있는  순례길 '은혜의 첫 길'이 개장식을 갖는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관광공사, 제주CBS가 지난 2011년부터 추진한 제주기독교 순례길 다섯 번째 마지막 코스인 '은혜의 첫 길'이 오는 14일 오전 10시 제주성내교회에서 개장식을 개최한다.

 

제주시 중앙로와 동문시장을 따라 사라봉까지 걷는 제주 기독교 순례길 '은혜의 첫 길'은 1908년 2월 제주 선교를 위해 제주를 찾은 이기풍 목사(1865~1942)의 제주선교 여정을 아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기풍 목사는 한국교회 최초로 배출된 7명의 목사 가운데 한 명이며 최초의 선교사다.

 

제주시 원도심권의 중심지에 위치한 제주성내교회에서 출발하는 '은혜의 첫 길'은 산지천과 동문시장 등을 거쳐 사라봉까지 8km 구간을 걸으며 제주 기독교 초기 역사 현장을 드라마 같은 이야기와 함께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이기풍 목사는 산지포구에 도착한 1908년 이후 활동과 함께 이기풍 목사가 제주 선교를 시작하기 이전에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었던 제주도민들의 삶도 엿볼 수 있다. 이는 제주 선교의 밑거름 역할을 감당한 제주 출신 첫 교회장로인 김재원, 홍순흥 등 초기 제주도 기독교인들이 받은 은혜를 지역 사회에 헌신한 길을 따라가는 코스다.

 

1908년 이기풍 목사가 몇 명의 교인들과 함께 했던 향교골 기도모임과 1909년 제주시 일도리 중인문(현재의 동문 로터리 부근)내에 두 채의 집을 마련하여 예배를 드린 이야기 그리고 1910년 삼도리 구 출신청사(出身廳舍)에 마련했던 예배당 터를 만나게 된다.

이기풍 목사는 제주성내교회에 '제주사립 영흥학교'를 설치하였는데, 영흥학교는 신식교육의 장이었다. 이후 영흥학교는 영흥의숙으로 확장되었고, 모슬포지역 광선의숙과 협재지역 영재 야학부, 특히 제주 최초의 유치원(현 제주동부교회 중앙유치원)으로 이어진다.

 

'은혜의 첫 길'에서는 항일 구국 운동에 나섰다가 일제에 의해 제주도로 유배된 민족 지도자 남강 이승훈 선생이 기독교 정신으로 제주도의 신식교육에 끼친 노력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제주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1919년 5월 독립군자금 모금이 교회를 통해 펼쳐졌을 때 제주지역 3명의 목사(김창국·윤식명·임정찬)가 독립군자금 모금에 연관되어 체포된다. 이 일을 주도했던 제주성내교회 조봉호 조사는 대구교도소에 수감되어 1920년에 옥사하였다. 그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지만, 도민들에 의해 세워진 '순국지사 조봉호 기념비'를 사라봉 자락에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의 한 부분을 감당했던 YMCA의 정신을 이어받아 1951년 설립된 제주YMCA 현재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또 1950년 한국전쟁 때 제주도로 피난 온 한국교회 신앙인들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다. 감리교와 성결교는 피난 온 이재민들과 천막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선교활동을 했으며 그때 사용했던 예배터와 옛 모습의 예배당을 느낄 수 있다.

 

이 처럼 제주 순례길 '은혜의 첫 길'은 제주시 관덕정을 중심으로 초기 제주 기독교 선교 활동의 역사적 흔적과 동문시장·산지천의 현대적인 모습도 만나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교차하는 길이다.


이날 개장식은 1부 감사예배와 2부 개장식으로 진행된다. 개장식이 끝나면 제주성내교회에서부터 사라봉 순국지사 조봉호 기념비까지 약 8km를 함께 걷는다. 

○ 코스길이 :
○ 주요코스(도보, 약 8km 추정)
 제주성내교회 – 관덕정 - 제주 영락교회 첫 예배터 – 이기풍 목사 기착지(산지포구)- 한국전쟁 피난민 교회 – 제주제일성결교회 터 - 제주중앙감리교회 터- 제주동부교회 터- 제주노회 터 - 제주동도교회 - 제주 첫 유치원 중앙유치원(제주동부교회) - 배형규 목사 순교기념비(제주영락교회)- 순국지사 조봉호 기념비–사라봉

 

<은혜의 첫 길에서 만나는 역사 이야기>

 

①제주성내교회
1908년 2월 제주에 첫 선교사로 파송된 이기풍 목사는 산지포에 도착한 후에 중인문 내에 자리를 잡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어 출신청사 터에 1923년 반 양옥식의 교회를 신축하고 부흥했다. 1974년 현재의 아름다운 예배당을 건축하고 1976년 헌당예배를 드렸다.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처음부터 아동교육 선교를 시작했으며 김재원, 홍순흥, 김홍련, 김행권, 조봉호 등과 함께 복음의 사역을 펼쳐 나갔다. 2008년 교회창립 100주년기념비를 제막했다.


②제주YMCA
1903년 기독교 청년회를 창설하며 시작된 YMCA는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의 한 부분을 담당했으며 교육과 문화 활동을 펼쳤다. 제주YMCA는 제주의 가장 오랜 NGO로 1951년 한국전쟁 중에 교계지도자들과 피난 온 기독교계 엘리트가 중심이 되어 동부교회에서 창립되었다. 제주 현대사의 암울한 시절 청소년과 지역사회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③관덕정 광장
관덕정은 제주시내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사적지로, 1448년 세종 30년에 병사의 훈련과 무예수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이곳의 용도는 군사 훈련을 지휘하고 검열하는 곳이었으며 관민이 함께 공사를 의논하거나 잔치를 베푸는 곳이기도 했다. 이기풍 목사가 선교하던 당시, 제주시내 가장 큰 시장이었던 오일 시장이 관덕정 앞에 위치해 있어 전도의 중심지였다.

④제주영락교회 첫 예배터
한국전쟁 때 피난민으로 제주에 들어온 서울영락교회 교인들이 모여 1952년 1월부터 평양옥(현재 함흥냉면)에서 예배를 드렸다. 1955년 제주시 일도리 석조건물, 1971년 일도1동 예배당, 1987년 일도2동 현재 교회까지 선교 영역을 확장했다. 제주선교 100주년을 기념해 2010년 제주지역에서 최초로 예장통합 총회장을 배출했다.

 

⑤이기풍 목사 기착지 산지포구
한국교회 최초로 배출된 7명의 목사 가운데 한 명인 이기풍 목사(1868~1942)가 1908년 2월 제주 선교를 위해 산지포구에 도착했다. 당시 산지포는 제주와 육지의 문물이 오가던 거점으로 교역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진 곳이다. 제주도 기독교의 공식적인 선교 활동을 펼친 이기풍 목사도 산지포구를 통해 들어왔고 가까운 칠성통에 임시 거처를 정했다. 그런 점에서 산지포구는 제주 기독교 선교역사에 의미가 크다.

 

⑥ 제주제일성결교회 터
한국전쟁을 피해 제주도에 피난 온 성결교회 성도들이 구 노동의원(건입동) 자리에 천막생활을 했다. 1951년 시작해 1953년 12월 제주성결교회는 80여명이 모이는 제주읍성결교회로 성장했다. 제일교회가 자리했던 제주시 일도1동 일대가 현재까지 ‘제일교’로 불리고 있다. 성결교회는 1978년 제주시 일도2동 남수각 오거리에 교회 건물(현 동도교회)을 매입해 사용하다 2000년 아라1동 새 성전으로 이전했다.

 

⑦제주중앙감리교회 터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제주도에 피난 온 감리교인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된 제주 최초의 감리교회이다. 일도1동 인근 피난촌 동부수용소에서 교역자와 평신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며 제주읍교회로 출발하였다. 5년 만에 일제 신사 자리에 성전을 건축하고, 제주도 선교의 중심 역할을 하겠다는 선교적인 의지로 제주중앙교회로 이름을 변경했다. 2013년 오라2동에 새 성전을 건축하여 옮겼다.

 

⑧제주동부교회 터
동문시장은 제주도를 대표하는 재래시장이다. 1945년 8월 광복 직후 형성된 동문상설시장이 그 시초인데, 이 시장은 당시 제주도의 유일한 상설시장으로 제주도 전체 상업 활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1954년 3월에 발생한 대형 화재로 시장 전체가 잿더미로 변하자 같은 해 11월 현재의 장소로 이전 되었다. 동문재래시장, 동문재래수산시장과 함께 가장 큰 규모의 상설 재래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동문시장내에 동부교회 첫 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⑨제주영락교회 터
이곳은 제주영락교회가 1987년 제주시 일도2동 현재의 교회로 이전하기 전까지 지역 사회를 섬기던 곳이다. 1955년 10월 건축한 제주시 일도리 예배당은 당시 제주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석조 건물로 주목을 받았다. 1971년 일도1동 예배당이 이곳에 있었다.

 

⑩ 제주노회 회관 터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제주노회 회관이 있던 곳이다. 1970년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회가 제주선교를 위해 제주기독센터를 이곳에 건축했다. 이곳에 제주기독의원이 마련돼 1977년까지 무료로 진료를 했다.  1979년 제주노회 사무실이 마련됐다. 1981년 한국선교회가 철수하면서 예장통합 제주노회에 건물과 재산을 무상양도 했다. 2014년까지 제주노회 회관으로 사용했다. 제주노회는 현재 제주시 오라동으로 이전했다. 예장통합 제주노회는 1930년 11월 14일 전남노회에서 독립노회로 자리 잡았다. 당시 제주성내교회 예배당에서 회장에 최홍종, 부회장 김재선, 서기 이도종, 부서기 부상규, 회계 김재원, 부회계 이덕연을 선출했다.

 

⑪제주동도교회

이곳은 제주제일성결교회가 2000년 제주시 아라1동 새 성전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1978년부터 사용한 교회당이다. 현재 동도교회 예배당은 1969년 구국기도회가 초교파로 기도재단을 설립하고 교회를 건립할 당시 모습이다. 동도교회 외형은 제주시지역에서 70년대의 아름다운 교회 모습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건축물이다. 제주동도교회는 서울동도교회가 제주선교를 위해 매입하고 1999년 10월 입당 예배를 드렸다.

 

⑫제주 최초 유치원 중앙유치원(제주동부교회)
중앙유치원은 1924년 4월 13일 김재원장로에 의해 설립된 제주지역 최초의 유치원이다. 이기풍 목사는 제주성내교회에 '제주사립 영흥학교'를 설치하였는데, 영흥학교는 선교차원에서 시작한 신식교육의 장이었다. 이후 영흥학교는 영흥의숙으로 확장되었고, 모슬포지역 광선의숙과 협재의 영재 야학부, 특히 제주 최초의 유치원(현 중앙유치원)으로 이어진다. 현재 제주동부교회 중앙유치원이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⑬배형규목사 순교기념비(제주영락교회)
제주시 일도1동에 있던 제주영락교회는 1987년 이곳으로 이전했다. 제주선교 100주년을 기념해 2010년 제주 최초로 예장통합 총회장을 배출했다. 제주영락교회 출신인 배형규 목사는 2001년 4월 제주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경기도 성남시 샘물교회에서 청년부 사역을 담당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해외선교도 수차례 다녀왔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하던 중 탈레반에 의해 피랍돼 7월 25일 순교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제95회 총회의 결의로 6.25 전쟁 이후 첫 순교자로 등재한다고 결정했다. 제주노회는 2012년 이기풍 선교기념센터에 이기풍 목사, 이도종 목사와 함께 배형규 목사의 순교비를 세웠다. 제주영락교회 뜰에도 순교기념비가 건립됐다.

 

⑭순국지사 조봉호 기념비


일찍부터 한학을 익혔던 조봉호는 한양에 상경하여 당시 근대 교육기관이었던 예수교중학교(경신학교)에서 공부했다. 여기서 그는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집안 사정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하였고, 주변 사람들과 신앙을 나누면서 금성리에서 기도모임을 이끌었다. 이기풍 선교사가 제주에 도착한 이후 신앙과 교육으로 민중계몽에 앞장서는 일꾼이 되었으나, 제주성내교회 조사였던 1919년 5월 독립군자금 모금을 주도하여 체포되고 대구교도소에서 수감 중에 순국한다. 사라봉 자락에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제주의 인물로 그를 기념하는 '순국지사 조봉호 기념비'가 세워졌다.

 

<제주 기독교 역사 현장>

▣ 이기풍 목사 기착지와 제주 최초 교회터
한국교회 최초로 배출된 7명의 목사 가운데 한 명인 이기풍 목사가 1908년 2월 제주 선교를 위해 산지포구에 도착했다. 당시 산지포는 제주와 육지의 문물이 오가던 거점으로 교역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진 곳이다. 제주도 기독교의 공식적인 선교 활동을 펼친 이기풍 목사도 산지포구를 통해 들어왔고 가까운 칠성통에 임시 거처를 정했다. 그런 점에서 산지포구는 제주 기독교 선교역사에 의미가 크다.
이기풍 목사는 제주에 도착하여 향교골에서 기도회를 시작으로 선교사역을 펼쳤다. 이후 일도리 중인문 안에 집을 매입하여 교회당과 사택으로 사용하였다. 유배 중이던 박영효의 재정적 도움으로 삼도리에 있는 옛 출신청사를 매입하여 예배를 드리다가 그 자리에 새로 건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신청사는 옛 훈련원 자리로 무과급제자가 근무하던 관아를 말한다. 교회터가 정해지자 본격적인 전도가 시작됐다. 제주성내교회 일대 주민들은 성내교회 인근 도로를 ‘복음로’라고 부르기도 했다. 현재 제주성내교회에는 1917년 제주교회 첫 당회록과 1927년 이기풍 목사가 사용했던 강대상이 보전되어 있다.

▣ 제주 초대장로 김재원·홍순흥
제주에 도착한 이기풍 목사가 전도에 큰 힘을 얻은 사건은 제주 토박이 신앙인 김재원과의 만남이다. 늑막염을 고쳐준 에비슨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은 그는 이기풍 목사가 제주에 오기 전 제주시 이호리 자택에서 쪽복음서를 뿌리고 다녔다. 김재원은 에비슨 선교사에게 '제주도에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편지를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기풍 목사의 전도를 맨 처음 받아들인 사람은 홍순흥이다. 1909년 제주에서 처음 세례를 받은 그에 대해 이기풍 목사는 "첫 열매, 첫 열매"라고 자랑했다고 한다. 그는 약품제조 판매업을 하면서 전도에 열과 성을 다했는데 1913년 김재원 다음으로 두 번째 영수(嶺袖)가 됐다. 1917년 4월 5일 김재원과 함께 제주도 최초로 장로 장립을 받았다.

 

▣ 한국전쟁 피난민 교회
한국전쟁으로 5만~6만 명의 피난민이 제주도에 몰려들었다. 이 가운데 피난 교인은 9600여명, 목사는 180명이라고 당시 '신앙생활'은 보도하고 있다. 피난민들은 주로 제주시 삼도이동, 일명 무근성으로 알려진 곳에 천막촌을 마련하여 거주하였고, 그 외 모슬포, 서귀포, 한림 등 제주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피난 교인들은 그들이 있는 자리에 교회를 세우거나 제주에 있는 기존 교회에 출석함으로써 제주 교회와 성도들에게 활기를 불어 넣었다. 감리교회와 성결교회에서도 제주도에 교회를 세움으로써 장로교회가 주도했던 제주 선교는 다 교파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피난 목회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신학교 교수진도 구성되었다. 1952년 9월 15일 70여명의 학생으로 대한신학교 제주분교 개교식을 가졌다.

 

▣제주 교회의 교육 선교
이기풍 목사는 제주성내교회에'제주사립 영흥학교'를 설치하였는데, 영흥학교는 선교차원에서 시작한 신식교육의 장이었다. 이후 영흥학교는 영흥의숙으로 확장되었고, 모슬포지역 광선의숙과 협재의 영재 야학부, 특히 제주 최초의 유치원(현 중앙유치원)으로 이어진다. 제주도 최초 유치원인 중앙유치원은 1924년 4월 13일 김재원 장로에 의해 설립됐다. 1943년 제주성내교회에서 운영하던 중앙유치원은 제주동부교회로 이설했다. 항일 구국 운동에 나섰다가 일제에 의해 제주도로 유배된 민족 지도자 남강 이승훈 선생도 기독교 정신으로 제주지역 신신교육에 많은 영향을 줬다.


▣ 제주성안교회
제주성안교회 역사는 1908년 2월 이기풍 목사의 제주 도착에서 시작됐다. 교인수가 급증하자 1949년 성내교회가 동부교회와 제주서부교회로 나뉘게 된다. 1953년 전국적인 장로교회 분열로 서부교회에서 기장은 성내교회로, 예장은 성안교회로 분리 설립되었다. 제주성안교회는 최초의 명칭 성내(成內) 의미를 현대적으로 살려 '성안'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974년 제주시 삼도1동에 예배당(현 비전교회)을 건축하여 제주 선교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 2007년 현재의 새 성전 입당 예배를 드렸다. 2008년 2월 25일 성안·성내·동부교회가 제주 선교 100주년을 기념해 '한 몸 한 예배'를 제주성안교회에서 드렸다.

 

▣ 제주서광교회(고신)
제주서광교회는 1975년 8월 제주시 이도2동 한 가정집(제주시청 인근)에서 개혁주의 신학과 순교신앙을 표방한 제주고려교회가 처음 설립됐다. 예장고신 전국여전도회연합회가 1974년 제4회 총회에서 제주에 교회를 개척하자는 결의를 했고, 그 이듬해 제주시 구좌읍 세화 출신의 조명서목사(당시 전도사)를 개척목사로 파송하며 그 역사가 시작됐다. 첫 교회 이후 1979년 지금의 교회가 있는 제주시 삼도1동에 예배당을 신축하고 교회명도 제주서광교회로 변경했다.

 

▣ 제주순복음교회
제주순복음교회는 1982년 2월 9일 표순호 전도사 가정과 박영실 집사 등 3명이 모여 제주시 일도2동 임대건물에서 시작되었으며 개척 당시 제주시 권에서는 첫 순복음교회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85년 제주시 일도2동 부지를 구입 후 1989년 10월 지금의 성전이 완공됐다. 제주 최초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순복음) 총회장이 탄생하기도 했다.

▣ 동문시장
제주도를 대표하는 재래시장이다. 1945년 8월 광복 직후 형성된 동문상설시장이 그 시초인데, 이 시장은 당시 제주도의 유일한 상설시장으로 제주도 전체 상업 활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1954년 3월에 발생한 대형 화재로 시장 전체가 잿더미로 변하자 같은 해 11월 현재의 장소로 이전 되었다. 동문재래시장, 동문재래수산시장과 함께 가장 큰 규모의 상설 재래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동문시장내에는 제주동부교회 첫 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동부교회는 동문시장 상인들과 동고동락을 하면서 선교의 터를 넓혔다.

 

▣ 사라봉

높이 148m의 낮은 동산이다. 사라봉의 기슭에는 일본군이 건설해 놓은 동굴진지가 8개소에 걸쳐 산재해 있다. 이 시설물은 1945년 일본의 패망 직전에 건설된 동굴진지로 제주도의 북부 해안(현 제주항) 방면으로 상륙하는 연합군을 저지하고 진드르 비행장과 정뜨르 비행장을 방어하기 위해 건설된 시설물이다. 별도봉이 곁에 있으며 영주10경 하나인 사봉낙조(沙峰落照)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 제주도민들의 손으로 건립된 순국지사 조봉호 선생의 기념비가 있다.

 

제목
제주 기독교순례길 '은혜의 첫길' 개장
"자전거로 가는 제주 순례길"
"자전거로 가는 사순절 순례길"
추억 셋3 - 제주 순례길 보수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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